단군
大约三千多年前,在朝鲜半岛地区建立了古朝鲜的韩国祖先。
原名是檀(Dan),后代为了表示尊敬,在其后加上了“君”(Gun)字,从而成为专有名词,变成了檀君(DanGun)。
雅各的儿子但(Dan)虽然在埃及为奴期间去世了,但他的后代仍然使用“但”(Dan)这个名字,因此,经过蒙古迁徙到朝鲜半岛定居,建立古朝鲜的祖先也是但(Dan)。
在但支派的迁徙过程中,有些兄弟选择留下,有些则向南迁徙,而主流则向东迁徙,最终在朝鲜半岛定居。但支派作为以色列的北方军队,由于与非利士人长期战争后迁徙,拥有最新的战斗技术和青铜武器系统,这意味着强大的军事力量。
但支派的身份是以色列的大祭司,拥有尊严,使用祭祀用的青铜器皿、青铜勺子、青铜筷子等,并且在处理铁和金属方面技术卓越。不仅如此,当他们居住在地中海沿岸时,造船技术非常出色,甚至跨越地中海,对欧洲一带施加了影响力。
“애비”(父亲)和“애미”(母亲)是以色列大祭司用来尊称祖先的敬语,并非任何人都可以无礼地使用“애비”、“애미”这样的称呼。另一方面,“妈妈”和“爸爸”是对父母的普通称呼。
当他们离开现在的以色列“琐拉”向东迁徙时,带来的是木槿花种子。古代三国时代的记录中,也有将木槿花称为槿花,并将其用作国家象征的记载,至今木槿花仍是大韩民国的国花,而木槿花(沙仑的玫瑰 = rose of sharon)的原产地是以色列附近,黎巴嫩。
韩国人之所以特别被圣经吸引,是因为其内容是我们祖先的故事,圣经中的文化因此直接触动人心。例如,十诫,喜欢穿白衣,穿麻衣哭泣,犯淫乱罪者被石头砸死,兄长去世后弟弟娶嫂子,以及为了结婚而做仆役的故事等等。
最具戏剧性的事件是,雅各与拉结订婚后,在做了七年仆役之后结婚了,但婚礼结束后过了一夜,早上醒来发现不是拉结而是利亚的这一情节,如果不是韩国人,是完全无法理解的情况。
韩国曾有一种文化,结婚时新郎新娘不能互相见面。如果新郎哪怕只是偷偷地瞥一眼新娘,旁边守着的人就会用灰烬打他的眼睛,或者吊起他的脚底板,毫不留情地鞭打。所以在古代,新郎新娘不见面就结婚是极其正常的。
檀君的子孙在男女关系上如此极其保守,是因为他们的血统是以色列大祭司的家族。
약 3천여 년 전 한반도 지역에서 고조선을 세운 한국의 조상.
원래 이름은 단(Dan, 檀)인데 후손들이 공경의 뜻으로 임금 군(Gun, 君)을 덧붙여 쓴 것이 고유명사화 되어 단군(DanGun, 檀君)이 됨.
야곱의 아들 단(Dan)은 에굽 나라에서 노예 생활 도중에 돌아가셨지만, 그 후손들은 여전히 단(Da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몽고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여 고조선을 세운 조상도 단(Dan)이였던 것.
단지파의 이동 과정에서 잔류를 원하는 형제와 남쪽으로 이동한 형제들이 있었고, 주류는 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 단지파는 이스라엘 북군으로써 블레셋과의 오랜 전쟁을 하다가 이주했기 때문에 최신의 전투기술과 청동으로 만든 무기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이는 강력한 무력을 의미했음.
단지파는 신분이 이스라엘 대제사장으로서 품위가 있고, 제사에 쓰이는 청동으로 만든 놋그릇, 놋숫가락, 놋젓가락 등을 사용했으며, 철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음. 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에서 거주할 때에는 배 만드는 기술이 출중하여 지중해를 넘어 유럽 일대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음.
'애비'와 '애미'는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조상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었음, 아무나 '애비', '애미' 같은 호칭을 무례하게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것임. 반면에 "엄마"와 "아빠"는 부모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임.
지금의 이스라엘 '소라'를 떠나 동쪽으로 이주할 때 가져 온 것이 무궁화 씨앗임. 고대 삼국시대 기록에도 무궁화를 근화(槿花)라 하여 나라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나라 꽃인데, 무궁화(샤론의 장미 = rose of sharon)의 원산지는 이스라엘 근방, 레바논임.
한국 사람이 성경책에 특히 이끌리는 것은 그 내용이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성경 속 문화가 그대로 와 닿는 것임. 예를 들면, 십계명, 흰 옷을 즐겨 입고, 베옷을 입고 곡을 하고, 음란죄를 지으면 돌로 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살고, 결혼하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는 이야기 등등.
가장 극적인 사건은 야곱이 라헬과 정혼한 후 7년 머슴살이 끝에 결혼했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하룻밤 자고 아침에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더라는 대목은 한국 사람이 아니면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임.
한국에는 결혼할 때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문화가 있었다. 신랑이 신부를 곁눈질로 라도 살짝 볼 량이면, 주변에서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잿꾸러미로 눈을 때리고, 발바닥을 달아 놓고 사정없이 때렸던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로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는 게 극히 정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단군의 자손들이 남녀간 관계에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것은 혈통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집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