ガイド

毎日罪の垢を洗い流す行事

罪人を救おうとされる救世主の立場から見ると、礼拝は洗濯をするようなものです。

罪人の仮面を剥がし、義人、すなわち罪に打ち勝つ하나님を創り出すことが「救世主 하나님の救いの働き(役事)」であるため、世の全ての人々は皆、義人となる候補者として、礼拝と祈りを通して罪人の仮面を脱ぐのです。

義人(=勝利者 하나님=救世主)となる候補者たちが勝利祭壇に出て礼拝を捧げるのですが、罪悪の世で生活していると、罪に汚染されてしまうのは避けられないため、毎日出てきて汚染された罪の垢を洗い流すことは、非常に非常に重要なことです。

その瞬間の罪、その日の罪がその都度早く洗い流されないと、こびりついた垢となり、罪を洗い流す救世主님に負担をかけ、かなりの時間がかかることになるため、この道を歩む하나님の子どもたちにとっては、何があっても毎日礼拝に出席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霊の戦いにおいて、毎日礼拝を休むということは、悪魔が救世主に打ち勝つ状況であり、その人は救われないのであり、救世主に打ち勝った悪魔の人が祭壇に来て座っているだけでも、周囲の人々に霊的汚染物質を発散することになるため、毎日礼拝を休む人は、祭壇への出入りが厳しく拒否されます。

出てきては来なくなる人だけでなく、その人を連れてくる人までも出入りが拒否されます。なぜなら、霊的に洗濯物を山のように積み上げている人に、糞がたっぷり詰まった糞雑巾を投げつけ、きれいに洗えと言うようなものだからです。

なぜその連れてくる人までも出入りを禁止するのかというと、その人を連れてくる前からすでに、その救世主の霊に打ち勝った悪魔の人と交流しながら汚染され、真っ黒なカラスのようになって祭壇に来て座っている、灰色分子のような人だからです。要するに、「祭壇に出てきては来なくなる人と決して接触するな」という主님の命令に従わず、「その連れてくる人までも出入りを禁止せよ」という命令があったからです。

救世主님がいかに大変な働きをされているか、その事情を少しも知らない人のこのような無知な行動によって、救世主님に途方もない負担を負わせることになってはなりません。

それにもかかわらず、事実上、救世主님は出てきては来なくなる人を連れてきても、快く迎えてくださいます。その大変な胸の内を明かさずに喜んでくださいますが、事実上、重く大変な荷物を預けることになるのです。

その上、このような弊害となる人に面会する機会を与え、その人が望むことを話す機会を与えると、主님は拒否なさらず、その頼みを全て聞いてくださるので、「これは主님がお好みになり、認められたことだ」と言って、禁止事項を無力化したり、例外適用を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この時は、主님のお人柄と事情を察し、誰かが前に出て

「これは主님が強く指示された禁止事項です。出てきては来なくなる人を知りながらも中に入れる人までも除名せよと強く仰せになりましたが、そうなると、私を含め、その人を知る他の聖徒たちを全員除名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主님。それは絶対にできません。」と申し上げ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救世主님が喜んでくださるからといって、救世主님の内情を知らないままこのような状況が続けば、救世主님に負担をかける累(累)となり、人類救済の働きと救いを得る人々が大きな被害を被ることになります。

したがって、礼拝を休むことが決してあってはならず、出てきては来なくなる人々、そのような人を連れてくる人々、それを知りながらも黙っている人々、礼拝を捧げる目的以外に事業などのために来る人々の出入りは、神聖な祭壇が汚染されないよう、警備室、総務課、秘書室で根本的に遮断されます。

勝利祭壇での祈りや礼拝は、主님と私の間に成り立つ霊的交感です。したがって、誰かが進行を見たり、賛美歌を代わりに歌ったり、説教を代わりに行ったり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100%主님ご自身が礼拝を導かれます。

礼拝が10時に始まるなら、遅くとも10分ほど前に祭壇に入場し、祈りと準備賛美歌を歌います。礼拝が始まった後は入場できません。

入場する際には、出席カードをスキャンし、靴袋に靴を入れて本人が持って入ります。ほとんどの聖徒たちは床に座布団を敷いて座りますが、前から隙間なく列を揃えて座ります。中央の赤いカーペットを基準に、左側には女性が、右側には男性が座ります。新しく来られた方々のための椅子も、壇上のすぐ前両側に用意されています。

主님はすでに到着され、面会客を迎えられ、従順者の会議を導かれ、時間に合わせて壇に立たれます。

祈りと準備賛美歌を歌っていると、主님が壇に立たれる時、皆が立ち上がり拍手で迎え、席に着く前に、ほとんどの人が一度大きな礼をします。

主님は賛美歌の題名を仰せになり、伴奏に合わせて通常2~3曲の賛美歌を主님と共に歌います。主님がお歌いになる賛美歌の声は、世の美しい声ではありません。ただ、恵みを引き寄せ、聖徒たちに注ぎ込もうとする切実な叫びに近いものです。美しく歌う音楽的技巧は不足し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が、切なさと極めて深い真心に満ちた恵みの賛美歌です。

賛美歌を歌う時に恵みが繋がるのですが、強く手拍子を打ち、大きな声で賛美歌を歌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曲につき通常2回ほど繰り返して歌います。

歌詞が画面に表示されますが、リアルタイムでうまく補助ができないために、主님が間違った歌詞を歌われたり、スムーズでない状況が時々生じますので、ご理解ください。

賛美歌に続いて説教の御言葉を語られますが、台本なしに、その日その時その場に集まった聖徒たちの霊的状態によって、御言葉の主題と深さ、そして表現が変わります。通常、礼拝は1時間ほどかかりますが、3時間や4時間かかることもあります。

「万の賛美歌」で礼拝を終え、退場される時、聖徒たちは大きな拍手で感謝を捧げます。献金は日曜礼拝の時のみ行われます。

救世主님は毎日、少なくとも3回以上、大小の礼拝を導かれます。各聖徒たちは一度だけ礼拝を捧げるでしょうが、救世主님は、日曜日や祝日もない毎日、全国の地方祭壇を訪問し、多い時には5回、6回と導かれます。

インターネットで提供される礼拝映像は역곡本部祭壇での礼拝と同じであり、地方祭壇の場合、時間や礼拝映像の運営が独自に異なる場合があります。

主님がお説教された御言葉のように、하나님の光の体としていらっしゃる今。私たちは主님を以前のように直接お迎えできない立場から、録画された礼拝映像で毎日礼拝を捧げていますが、実際には、主님は光の体として毎日毎瞬間、祈り、礼拝を捧げる時に恵みを降ろしておられます。

世の中に重要な用事があって礼拝に出席できない状況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は死ぬしかない罪人の事情であり、毎日礼拝に出席せよというのは、罪を洗い流して救いを与えようとされる救世主の立場からの事情です。

매일 죄의 때를 씻는 행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구세주의 입장에서 예배는 빨래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인의 탈을 벗겨 의인, 곧 죄를 이기는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구세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役事)'이기 때문에 세상 만민은 모두 의인될 후보자들로서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죄인의 탈을 벗는 것입니다.

의인(=승리자 하나님=구세주)될 후보자들이 승리제단에 나와서 예배를 보는 것인데, 죄악 세상에서 생활하다 보면 죄에 오염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 나와서 오염된 죄의 때를 씻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입니다.

그 순간의 죄, 그날의 죄가 그때그때 빨리 씻어지지 않으면 묶은 때가 되어 죄를 씻는 구세주님에게 부담이 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하나님의 자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의 전쟁에서, 매일 예배를 빠진다는 것은 마귀가 구세주를 이기는 상황이라 그 사람은 구원이 안 되는 것이고, 구세주을 이긴 마귀의 사람이 제단에 와서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적 오염 물질을 발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일 예배를 빠지는 사람은 제단 출입이 엄격하게 거부됩니다.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데리고 오는 사람까지도 출입이 거부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빨래꺼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는 사람에게 똥이 그득 담긴 똥걸레를 던져 깨끗하게 빨라고 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 데려오는 사람까지 출입을 금지하느냐면, 그 사람을 데려오기 전부터 이미 그 구세주의 영을 이긴 마귀의 사람과 소통하면서 오염되어 시꺼먼 까마귀처럼 되어 제단에 와 앉아 있는 회색분자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제단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과 절대로 접촉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그 데려오는 사람까지 출입을 금지하라"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님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시는지 그 사정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의 이러한 무지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구세주님에게 엄청난 부담(負擔)을 떠안기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구세주님은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을 데리고 와도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그 힘든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반색하시지만, 사실상 무겁고 힘든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폐(弊)가 되는 사람에게 접견할 기회를 줘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기회를 주면 주님은 거절을 안 하시고 그 부탁을 다 들어 주시니, "이것은 주님이 좋아하시고 인정한 것이다"라며 금지사항을 무력화시키거나 예외 적용을 하면 안되는 겁니다. 이 때는 주님의 성품과 사정을 헤아려 누군가 나서서

"이것은 주님께서 강력하게 지시하신 금지사항입니다.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을 알고도 들여보내는 사람까지도 제명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저를 포함해서 그 사람을 아는 다른 성도들을 전부 다 제명하셔야 됩니다. 주님. 절대로 안됩니다."라고 말씀드려야 되는 겁니다.

구세주님께서 반색을 하고 좋아하신다고 해서, 구세주님의 속 사정을 알지 못한채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구세주님께 짐을 지우는 누(累)가 되고 인류구원의 역사와 구원을 얻을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겁니다.

따라서 예배를 빠지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되고,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데려오는 사람들,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 예배보는 목적 이외에 사업 등을 위해 오는 사람들의 출입은 신성한 제단이 오염되지 않토록 경비실, 총무과, 비서실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승리제단에서의 기도나 예배는 주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영적 교감입니다. 따라서 누가 진행을 본다든지, 찬송가를 대신 부른다든지, 설교를 대신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100% 주님께서 친히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예배가 10시에 시작 한다면 늦어도 10분쯤 전에 제단에 입장하여 기도와 준비 찬송을 합니다. 예배가 시작된 이후에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입장할 때에는 출석카드를 스캔하고,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담아 본인이 가지고 들어 갑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는데, 앞에서부터 빈틈 없이 줄을 맞춰 앉습니다. 중앙의 붉은 카펫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여성이, 오른쪽에는 남성이 앉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을 위한 의자도 단상 바로 앞 양옆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도착하셔서 면회객들을 맞으시고, 순종자 회의를 인도하시고, 시간에 맞추어 단에 서십니다.

기도와 준비 찬송을 하다가 주님이 단에 서실 때 모두 일어나 박수로 맞이하고 자리에 앉기 전에 대부분 큰 절을 한번 반합니다.

주님께서 찬송가 제목을 말씀하시고 반주에 맞추어 보통 2~3개 찬송가를 주님과 함께 부릅니다. 주님의 찬송가 소리는 세상의 고운 목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은혜를 끌어당겨 성도들에게 부어주려는 처절한 절규에 가깝습니다. 예쁘게 부르는 음악적 기교는 부족할지라도 애절함과 지극한 정성으로 가득찬 은혜의 찬송입니다.

찬송할 때에 은혜가 연결되는데, 손뼉을 세게치고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러야 됩니다. 한곡당 보통 2번정도 반복하여 부릅니다.

가사가 화면에 나오는데 실시간으로 보조를 잘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주님께서 잘못된 가사를 따라 부르거나 매끄럽지 못한 상황이 간혹 생기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에 이어 설교 말씀을 하시는데, 대본 없이 그날 그 때 그 자리에 모인 성도님들의 영적 상태에 따라 말씀의 주제와 깊이, 그리고 표현이 달라집니다. 통상적으로 예배는 1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3시간이나 4시간 걸릴 때도 있습니다.

"만가지 찬송"으로 예배를 마치시고 퇴장하실 때 성도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드립니다. 헌금은 일요일 예배 때만 합니다.

구세주님께서는 매일 최소 3차례 이상 크고 작은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각자 성도들은 한 번만 예배를 보겠지만, 구세주님은 일요일 공휴일도 없는 매일 예배를 전국 지방제단을 방문하여 많게는 5차례, 6차례씩 인도하십니다.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예배 영상은 역곡 본부제단에서의 예배와 동일하며, 지방 제단의 경우 시간이나 예배 영상 운영이 자체적으로 다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설교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빛의 몸으로 계시는 지금. 우리는 주님을 전처럼 마주 대할 수 없는 입장에서 녹화된 예배 영상으로 매일 예배를 보고 있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빛의 몸으로 매일 매 순간 기도하고 예배 볼 때 은혜를 내리고 계십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사정이고, 매일 예배에 참석하라는 것은 죄를 씻어서 구원을 주시려는 구세주 입장에서의 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