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에 들어가기 직전부터 밀실에서의 연단

해와 이긴자와 밀실

밀실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58년경 영모님께서 소사에다 제 1신앙촌을 건설하시고 전국 각지에 산재되어 있는 양떼들을 소사 신앙촌으로 모아서 은혜역사를 하실 때였다.

그런데 오만제단에 예배보러 올라오는 수많은 교인중에 천사마귀라고 끌려 나가는 여자분이 있었다.

매일같이 안내원들이 개 끌어가듯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끌려 나갈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예배시간에 예배보러 올라 왔다.

신앙촌 경비들이 이 분에게 ‘나는 천사마귀입니다’라는 팻말을 써서 가슴과 등에 달고 새끼줄로 묶어서 신앙촌 전역을 끌고 다니며 수모를 가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0년대 후반기에 소사 신앙촌에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것으로, 밀실은 천사마귀라는 낙인이 찍힌 홍권사라는 분이 기도생활하는 곳으로 시작된 곳이다.

당시 홍권사가 오만제단 뒷산을 넘어가면 털보가 있는데 털보를 찾아가서 은혜를 입혀 키워보라는 영모님의 지시를 꿈에서 받고 오만제단 넘어 숲속에 가보니 전봉국 집사가 있었다.

전봉국 집사는 그 때 당시에는 50대로서 구레나룻이 얼굴 전체에 가득하였던 사람인데 이 전집사는 그 분의 모친과 함께 닭 키우던 닭집을 그대로 이용하여 잠을 자며 지내고 있었다.

그 때부터 전봉국 집사를 집중적으로 키워 보려고 해와 이긴자도 거기서 기도생활하며 기거하게 되었다.

밀실 내부에서 대문쪽을 내려다 본 풍경, 꽃이 많아 ‘꽃집’ 이라 불렸다.

당시 해와 이긴자되시는 홍권사님의 모친이 찾아와서는 우리 딸이 천사마귀인데 마귀 새끼가 굶어서 죽어야지 먹으면 안된다하면서 조금밖에 없는 쌀과 약간의 취사도구를 몽땅 가져 가버리는등 핍박을 가하였다.

그래서 전집사의 모친이 아랫마을에 가서 문전걸식을 하여 찬밥을 얻어 오면 그것을 씀바귀와 시래기를 넣고 죽을 끊여 셋이서 훌훌 마시고 그것도 없으면 굶으면서 지냈던 것이다.

또한 인정머리 없는 신앙촌 경비들이 천사마귀가 있다 하여 거처 하던 닭집용 움막을 헐어버려 추운 겨울에도 바위 위에서 하늘을 지붕삼아 지내야 하는 처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영모님의 숨은 뜻을 모르는 교인들은 그 천사마귀를 없애버리는 것이 영모님의 뜻인 줄로만 알고 견디지 못하게 핍박을 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모님께서는, 언젠가 소사 신앙촌내에 있는 자유시장에서 불이 난 일이 있는데, 영모님은 이 불이 난 후에 타다 남은 목재 중에 쓸만한 것을 가지고 저 오만제단 너머 계곡에 천사마귀가 있는 곳에 기도실을 하나 지어주라고 건설대 반장에게 명령을 하셨다.

그 때 기도실로 아무렇게나 지어준 건물이 오늘날 아담과 해와를 배출한 밀실이 되는 것이다. 이 곳에서 전집사를 키워봐도 되지 않으니까 해와 이긴자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키워 보시고 또 다른 사람을 키워보시고 하면서 18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애를 쓰고 기를 썼던 것이다.

해와 이긴자가 전도를 하러 나가실 때에는 운동화를 단정히 신으시고 복장도 단정히 하여 나가셨으나 차는 타지 않고 걸어서 집집마다 다니시며 전도를 하였다.

때로는 비가 와서 냇물이 넘쳐 위험한 상태에 처해져도 영모님의 명령을 따라 포기하지 않고 몸을 던져 떠내려가면서 풀뿌리를 잡고 건너편 언덕까지 간신히 건너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 분은 생명을 걸고 움직이는 분으로서 이 험난한 가시밭 길 외롭고 고독한 길을 수십년간 걸으셨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힘이 든 해와 이긴자께서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시지 아니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겠나이까?” 하는 묵시록에 있는 말씀대로 기도를 하니 하나님의 사정이 불리하게 되어 영모님 사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참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해와 이긴자가 한 번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는 해와 이긴자가 약해졌다가 되었고 육적으로는 사모님이 돌아가시는 참변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 영모님께서 해와 이긴자를 들어 올려야 되므로 곤욕을 더 당하게 되시고 그로 인하여 아담 이긴자가 나타나는 일이 더 지연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르는 가지가 올라가다가 떨어지게 되면 세상이 들썩거릴 정도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였던 고로 이 사람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살얼음 딛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실제 이 사람이 자유율법을 어기고 떨어지게 되면 대형사고가 나고 세상이 어수선하게 되었다.

언젠가 영모님께서 축복일에도 기장 단에 서시지 못하고 몇 개월씩 뼈와 가죽만 남은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지내신 일이 있으셨다. 그 때가 일본 한요회사의 다무라 전무가 전자시계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기계를 납품하기 위하여 계약차 와서 환영식을 할 때인데, 그 때의 기념사진을 보면 영모님의 얼굴은 완전히 뼈만 남은 상태에 있었다.

이 때가 바로 이 사람이 자유율법을 지키고 올라가는 중에 지키지 못하고 떨어진 때였던 것이다. 이사람이 마귀를 이기고 자유율법을 잘 지켜나가 1980년 2월, 1 차 이긴자가 됐다는 허락함을 얻고 전도하러 나가서 기성교회 하나를 통째로 전도하여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는데 그것이 좋아하는 음란죄가 되어 떨어지게 되니 그 해 5월에 광주사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만약 그때 다시 이기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지구는 점점 파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중국 원자재 개발권을 따다

이사람이 밀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남대문 영화빌딩 7층에서 수 십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회사는 날로 번창하고 돈도 어느정도 벌어놓아 이제는 고생 안하고 살아가나보다 하고 안도감이 마음 속에서 생기고 있었다. 그즈음 등소평의 친구로 장관자리에 있던 분의 자제 한사람이 홍콩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서는 중국의 원자재 개발권을 맡길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당시 우리나라 재계를 이끌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보았지만 그 사람들은 적임자가 될 수 없다며 남대문 근처 다방에서 우연히 만난 이 사람을 붙잡고 앉아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관상을 볼줄 아는 사람이었다. 중국의 광대한 원자재 개발을 맡아 중국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조르기에 이사람은 할 수 없이 가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재계의 거물들이 돈은 얼마든지 대주겠으니 동업을 하자고 추파를 보내왔다. 조그만 회사 사장이 졸지에 동양 일대의 갑부가 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었다.

 

해와 이긴자를 만나게 된 경위

그러나 그 무렵 지권사를 통해 알게 된 해와 이긴자는 이제부터 집에 들어가지 말고 회사에서 자라고 하였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 나가 오리털 침낭을 하나 사서 책상 위에서 잠을 잤다.

이사람이 해와 이긴자를 만나게 된 경위는 대충 이러하다.

하루는 남대문에 있는 이사람 회사로 전도관 시절에 알고 지냈던 지권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는 해와 이긴자를 증거하면서 여러 가지 말로 그 분을 한번 만나 보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이사람은 신앙에 관한 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오직 바라보이는 영모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그런 얘기에 마음을 빼았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라보이는 영모님께서 따라가라는 신호를 보내시므로 그녀를 따라 망원동에 있는 해와 이긴자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폭포수 같은 은혜가 쏟아지는 겄이었다.

마치 은혜를 머리 위에서 바께스로 내려붓는 느낌이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해와 이긴자가 너털웃음으로 맞이하는데 더욱 은혜연결이 되어왔다. 그러면서 바라보이는 영모님께서 싱글벙글 웃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사람은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이 분이 하나님의 신을 받은 은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장이 일주일째 퇴근을 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집에서도 회사로 찾아오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관심의 음란마귀를 이기다

이렇게 되자 해와 이긴자는 이사람더러 망원동 모 여관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시었다.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하시었다.

그래서 녹음기와 간단한 생활 필수품을 챙겨서 제일 조용한 2층 끝방에 입실하였는데 매일 한번씩 망원동에 있는 해와 이긴자에게 그날그날의 꿈풀이를 받으러 나가는 일 외에 하루종일 방안에서 영모님의 말씀을 테이프로 들으며 기도생활을 하였다.

매일 밤마다 꿈을 꾸었는데 이것을 상세히 적어 가지고 가면 해와 이긴자께서 그 전날의 심령상태를 꿈으로 풀이해서 호통을 치거나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이사람이 그 여관에 들어간 후 갑자기 손님이 많아지면서 옆방에서는 매일 밤마다 강간사건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사람은 불의라면 눈꼽만치도 허용하지 않은 성품이라 당장 뛰어나가 요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으나 다른 일에는 일체 관심도 생각도 하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던 고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테이프 말씀만 들으면서 애를 쓰며 가까스로 그 순간을 참고 넘겼다.

그리고 그 날 꾼 꿈을 적어가지고 가니 아니나 다를까 해와 이긴자께서는 관심의 음란죄에 걸려 넘어졌다고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이사람은 이제는 밖에서 세상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와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 다음날에는 어제보다 더 요란스럽게 강간사건이 일어 났다. “밖에 누구 없어요? 구해주세요!”라는 소리가 베니어 합판 한 장으로 막은 벽을 뚫고 귀를 찌를듯이 들려왔으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눈으로도 영모님 얼굴을 새기며 귀로는 영모님 설교 테이프를 열심히 들었다. 그렇게 해서 관심의 음란죄에 걸려 넘어가려는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다음날 해와 이긴자께서는 “어제는 겨우 이겼군” 하시었다.

다음날도 계속 강간 사건이 일어났으나 점점 확실하게 이겨나가니 얼마동안 계속되던 강간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손님이 들끓던 여관에 손님이 딱 끊어지게 되었다.

한동안 계속해서 손님이 없자 여관 주인은 무당을 불러 그 원인을 물어보니 무당은 209호실 손님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여관 주인은 도대체 209호실 손님이 하루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고 뭘 하나 하고 문틈으로 방안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방안에는 녹음기 소리가 들리고 이사람이 리시버를 귀에 꽃고 있는 것을 보고 이사람이 간첩인 것 같다고 정보부에 신고해 버렸다. 한 날은 정보부원 두명이 이사람을 찾아와서는 방안을 샅샅이 수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사람의 꿈풀이 노트에 적힌 내용중 북괴군이 남침한다는 등의 글귀를 보고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으나 단순히 꿈을 적은 것에 불과하고 육군 장교 전력등을 확인하고는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러면서 여관 주인의 신고로 오게 되었다고 슬쩍 귀뜸해 주었다.

 

밀실에 들어가다

밀실

이 사람이 여관에서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승승장구로 마귀와의 마음의 싸움에서 이겨나가니 해와 이긴자께서는 차를 가지고 와서는 짐을 챙기고 타라고 하시었다.

이사람을 태운 차는 서울을 빠져나와 이 사람이 수십 년간 연단 생활을 해온 소사 신앙촌의 오만제단 가는 옆 길로 해서 소위 밀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3년간의 마지막 연단생활이 시작되었다.

만약 그 당시 중국의 원자재 개발권을 가지고 그 길로 나갔으면 이긴자가 될 수도 없을 뿐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지 못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이 사람이 처음에 밀실에 들어가니 새로 온 사람이라 하여 독방을 주고, 텔레비젼을 사다주셨다. 텔레비젼을 켜고 화면을 보려니까 눈알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와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텔레비젼을 더듬어 스위치를 끄고 난 후, 해와 주님께 가지고 가서 “눈이 아파서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하며 반납했다. 그러자 해와 주님께서 “그럴꺼야” 하시면서 받아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오랫동안 종사하고 있는 형제들은 보리밥을 먹는데, 이 사람 혼자만 쌀밥을 주기에 “저도 보리밥을 주세요” 하고 말하여 보리밥을 먹었다.

또 다른 형제들은 중노동을 하는데 이 사람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저도 노동을 하게 해 주세요” 하고 요청하여 밀실 식구들과 같이 일을 했다. 처음에는 숙달이 되지 않아 고충이 많았다.

밀실의 해와 주님께서는 밀실 식구들의 생각 돌아가는 것을 일일이 지적하시었다. 해와 주님이 손을 펴시고 기운을 부으시면 은혜가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와 주님은 마귀를 무저항(無底缸)으로 쓸어넣는 무서운 능력을 행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해와 주님께서 일러주신 새로운 기도로써 “혈기마귀 뿌리째 뽑아서 무저항!” 이라고 기도하면 혈기마귀가 무저항에 쓸려 들어가며, 또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살인마귀 뿌리째 뽑아서 무저항!” 하면 못마땅한 마귀가 무저항에 쓸려 들어가는 것이 영의 눈이 트인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었다.

마귀를 무저항에 던져 잠그고 천 년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천 년이 찬 다음 마귀를 불가불 잠깐 놓아 주니까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천년성을 두르게 되어 있으며 천년성을 두르고 있는 마귀는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멸한다는 성경 묵시록 말씀 그대로 마귀를 무저항에 쓸어넣는 일을 해와 주님께서 실지로 행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수십년간 영모님의 얼굴만 쳐다 보면서, 영모님이 오실 인자요, 나의 주님이라 여기고 길을 가든지, 눈을 감든지 뜨든지, 영모님 얼굴만 바라보는 생활을 계속 해왔다.

그런데, 해와 주님께서는 밀실에서 예수 사진을 놓고 기도하시기에 영모님 사진을 놓고 기도하시고, 예수 사진을 없애세요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바라보이시는 영모님께서 못하게 만류하시는 고로 그냥 지냈던 것이다.

밀실 안에 있는 남자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분은 전봉국 집사이고 그 다음이 50이 다 된 이 사람이고 그 외에는 아들뻘 되는 2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청년들이 먼저 왔으므로 고참인데다가 밀실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4숫자이고, 이 사람 혼자 5숫자라 하여 막내둥이 취급을 하였던 것이다.

밀실에 나오는 형제의 가족 중 국민학생 어린이의 꿈에 5자가 거꾸로 보이면, 조사장이 자유율법을 지키다가 떨어졌다고 해와 주님께서 야단을 치고 펄펄 뛰시며 통곡을 하시는 고로 이 사람도 땅바닥에 주저 앉아 목을 놓고 울었다.

한번은 나는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다. 나는 도저히 하나님께 점령당할 수 없는 괴수 죄인이다라고 생각하고 해와 주님에게 이 사람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으니 이 사람이 존경하는 신앙의 동지 인 최수영 전도사를 데려다 키워 보세요하고 제의 해도 대답을 안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해와 주님은 감리교 목사를 데려다 키워보시고 또 장로교 총신대학 대학생을 데려다 키우시면서 그 애인까지 불러서 옆에 두고 키워 보시기도 하고 유장로 등, 그외 여러 사람을 이 사람이 보는 앞에서 키워보셨다.

그런데 그들은 힘든 연단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 지내다가는 하나같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해와 주님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계속 열심히 하라는 느낌을 주셨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꾸 안될 것 같이 생각되는 고로 6개월간 졸라서 드디어 최수영 전도사를 전도해보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하여 먼저 전화로 연락하여, 부천등기소 근처 모창고 앞에서 콜라병을 박스채 사다 놓고 마셔가면서 하루 종일 전도를 했다.

이 사람이 최전도사를 밀실로 데려가려고 열심히 전도를 하면서 영모님께서 키우신 틀림없는 해와 이긴자야. 하나님의 뜻이 밀실에 있어하는 등 여러모로 설득하려 하였으나 최전도사는 아니야! 그 사람은 천사마귀야! 영모님께서 분명히 천사마귀라고 하셨어! 어쩌다가 조형이 그 마귀 꼬임에 빠져 산 속에서 고생을 하느냐? 참으로 아깝다. 속히 나 와라! 하며 도리어 이 사람을 끌어 내려고 했다.

둘이서 실갱이 벌이기를 하루 종일 하다가 도저히 되지 않아 허탈한 심정으로 해와 주님을 뵈오니, 해와 주님께서 아시고 그것 봐 안돼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 사람은 네가 열심히 해라 너 하나 밖에 없지 않느냐하는 암시를 강하게 느끼고 그 때부터 더욱 열심히 매달리기 시작했 던 것이다.

 

자존심 교만마귀에 떨어져

1979년 12월 하순경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온합창단의 연말 정기 연주회가 있었다. 그 때 영모님을 비롯하여 영모님 사모님과 많은 전도관 교인들이 참석하였고, 이 사람과 해와 주님은 영모님께서 앉으신 좌석에서 옆으로 몇 좌석 건너서 앉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영모님의 모습을 뵈오니 영모님의 모습이 몹시 늙어 보이고 피로해 보이는 것이었다. 해와 주님과 이 사람은 이 못난 인생을 키워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밤잠을 못 이루시고 피를 토하시며, 죄를 담당하셔서 뼈와 가죽만 남아 초췌하게 되어버린 영모님을 뵙기가 몹시 죄송스럽고 하나님의 사정이 너무 곤고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손수건이 흥건히 젖도록 눈물을 펑펑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하나님의 기막힌 사정에 눈물이 자꾸 흘러 손수건을 짜서 눈물을 닦고 또 짜서 닦고 하다보니, 2-3시간이나 되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울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의자밑 바닥을 보니 눈물로 흥건해져 있었다. 영모님께서도 가끔씩 이쪽으로 눈길을 주시며 눈물을 감추시려고 하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얼마 후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설 때, 이덕빈 전도사를 만나 반갑게 악수를 했는데 순간 나는 이긴자이고 너는 죄인이다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었다.

해와 주님께서는 밀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조사장 이 새끼, 자존심 교만마귀에 걸려 떨어졌다”고 펄펄 뛰시며 뭇매를 가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놓고 울게 되니 밀실 식구들 모두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서 밀실이 초상집같이 되었다.

 

관심의 음란마귀에 떨어지다

해와 주님은 망원동에 자택이 있어서 매일 밀실까지 출근을 하셨는데 하루는 항상 오시던 시간이 지나도록 안 오셔서 언제쯤 오실까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해와 주님은 다른 날보다 훨씬 늦게 도착 하시면서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조사장 이 새끼, 이 개 같은 새끼! 기다리는 음란죄에 걸려서 떨어졌다!”고 하시며 야단을 치시고는 목을 놓고 우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온 밀실 식구들이 해와 이긴자를 따라 통곡을 하고 울었던 것이다.

그 때 이 사람도 두 다리를 땅바닥에다 뻗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면서 또 하나님을 괴롭혔으니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해와 주님의 쓴 매를 다 맞았다.

그런데도 맘속으로는 이 개 같은 마귀새끼 더 때려 주세요, 죽여 주세요하며 고소하게 여기고, 이를 갈고 치를 떨며 다시는 기다리는 음란죄에 걸리지 않으리라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이렇게 넘어지면 오똑이와 같이 다시 일어나서 새출발을 하여, 도전하고 또 도전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뒤돌아 보는 음란마귀에 떨어져

밀실

하루는 산에 가서 아카시아 나무를 베고 있는데, 저쪽에서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과거에 논산 훈련소 교관으로 있으면서 금마재건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 쳤을 때, 학생이었던 최군과 꼭 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것이 ‘뒤돌아보는 음란죄’에 걸린 것이었다.

이것을 아시고 해와 주님께서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소리로 “조사장!” 하며 이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순간 이크 또 걸렸구나는 생각과 함께 하던 나무는 두고 부리나케 해와 주님께로 달려갔다.

해와 주님께서는 조사장 저 새끼 떨어졌다고 펄펄 뛰시며 그 큰 손으로 닥치는 대로 후려치시고 우산대의 뾰족한 끝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쿡 쿡 찔러대며 야단을 치셨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감사한 마음으로 매를 맞았다.

기운이 없어 매를 맞는 것도 아니고, 또 때릴 때 팔을 들어 제지를 하던지, 몸을 약간 피하면 매를 맞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나’라는 것이 어느 정도 죽은 고로 여자 분에게 그런 뭇매를 맞고도 오히려 고소하게 여겼다.

이렇게 되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겁이 났으며, 다시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이 뒤돌아 보는 음란죄에 걸리지 않을려면 쉴 틈을 주면 안된다 하여 밭에 가서 일을 하든지, 산을 개간하였던 것이다.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개같은 마귀 새끼가 쉬기는 뭘 쉬어 마귀새끼. 너는 죽어야 되는데 쉬면 마귀가 도로 살아나니까 쉴 수 없어 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면서 정신이 들락 날락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몇 시간 뒤에 깨어나 보면 쓰러져 있는 고로 이 개같은 마귀새끼가 쓰러졌구나 하고 다시 일어나서 쇠 해머를 들고 돌을 깨며 개간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면 또 정신이 들락 날락하며 더 이상 참고 견딜래야 견딜 수 없는 경지에까지 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포기하지 않고 고도로 1초도 놓치지 않고 영모님을 바라보면서 계속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또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깨어나서는 죽도록 일을 하는 피투성이의 처절한 마음의 싸움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니 1초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오직 내 생명이 되신 하나님 영모님만을 바라보며 밀실 안에서 이 찬송가를 즐겨 불렀던 것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 해요.

험한 이 길 가도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우리 주님 팔내미사 내 손 잡아 주옵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오신 그 옛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맡기면서 옵니다.

주님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옵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 하옵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주신 소명 이루소서.

내일 일은 몰라요 찬송 +
설교말씀 일부
 

이 찬송은 작사, 작곡한 사람이 평양 신양리 형무소에서 공산당으로 부터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하는 날짜만 기다리며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 상태에서 불렀던 곡이었는데 이 사람의 처지를 그대로 표현한 찬송도 되는 것이었다.

이 밀실에서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절대로 살아서는 세상에 나갈 수 없으니 목숨을 끊어버려 끝장을 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긴자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였던 것 이다.

그렇게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짓이기게 되니 밀실 안에서 계속 해서 소변으로 피가 쏟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처음에 밀실에 입고 들어간 옷은 헐거워 입지 못하게 되었다.

한동안 짓이기는 생활을 하게 되니, 몸은 가죽과 뼈만 남아서 얼굴도 핼쓱한 상태로 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이 사람을 처음 보는 사람은 환자로 보았겠지만 구면인 자는 이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자유율법을 범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고 매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80년 2월 초에 “이긴자가 되었다!” 하여 해와 주님께서 옷도 맞추어 주시고 신발도 사주시면서 전도를 나가라고 하셨다.

그 후 이 사람은 걸어서 집집마다 전도를 하며 멀리 포리까지 매일 전도를 다녔다.

 

좋아하는 음란마귀에 떨어져

2010년 현재 밀실 주변 지도

하루는 은행리에 있는 은광 장로교회의 주임장로인 유장로를 전도 하였다.

유장로는 전도받은지 3일 만에 은혜를 받아 소변으로 피를 쏟은 것을 보여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니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다며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 교회를 조목사님께 드리겠으니 내일부터 단에 서서 예배도 인도하시고 마음대로 쓰시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장로교회 간판을 떼어버리고 전도관 간판으로 바꿔 달라고 하였더니 유장로와 그의 아들이 함께 그 자리에서 장로교 간판을 도끼로 찍어 쪼개버리는 것이었다.

전도관 간판으로 바꿔 달고 개관 예배를 보게 되었을 때 당시 기성교회 측 한국 복음 전도회 회장이었던 신영균 목사를 주축으로 차재복 장로 등이 이 사람을 만나 전도를 받았다.

예배를 다 보고 나서 그들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놀랍고도 새로운 진리의 말씀이라고 감탄하였다. 이렇게 이 사람 말을 듣고 기성교회 하나가 송두리째 간판을 바꿔 달고 넘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차재복 장로 등은 여의도 광장같이 넓은 데서 대규모 부흥집회를 갖게 되면 멀지않아 이 세상이 전도관 천지가 되겠다며 좋아하였다.

그 은광 장로교회에서 개관 기념집회를 마치고 밀실에 들어서자마자 해와 주님께서 조사장 저 마귀새끼가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 떨어졌다고 청천벽력 같은 고함을 치시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하늘이 노래지고 온 전신에 맥이 풀리며 몸이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이 죄라면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도저히 더이상 이 길을 갈 수 없으니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너무너무 괴롭혀드려 죄송하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몸둘 바를 몰랐는데 이제 또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서 떨어졌으니 저는 이제 포기하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니 그동안 살아온 가시밭 인생길이 생각나면서 슬픔이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사람은 밀실에 들어오면서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밀실에 들어와 마지막 연단을 받게되니 여기서 이긴자가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살아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굳은 결심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죽을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기가 차는 것이었다.

그 슬픔은 어디다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침내 이사람 숙소 앞에 있는 큰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매달 끈을 찾고 있는데 영모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성급하게 왜 그러는거야?”하시며 이사람 두 손을 붙들고 우시는 것이었다.

이사람도 같이 흐느껴 울면서 “죄송합니다. 또 하나님을 괴롭혀 드렸군요, 이 몸과 생명 전체를 모두 하나님께 맡겼으니 죽는 것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는데 죽을려고 했으니 내가 또 죽을 죄를 지었군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한참을 울다가 죽을 마음을 고쳐서 참고 견디어보겠다고 결심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영모님은 온데 간데 없으시고 방안에 이사람 혼자 있는 것이었다. 영모님이 문을 열고 나가셨나 하고 문을 보니 문고리는 그냥 걸린 채로 있었다.

그리하여 죽으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이를 갈아 부치고 연단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 넘어진 것이 3월 하순경이었는데, 그 때부터 전도하러 가지도 못하고 나를 짓이기는 연단을 가일층 계속하였다.

모든 형제를 하나님으로 여기다

외부인들에게는 ‘꽃집’ 이라 불렸던 밀실, 외부에서 본 입구의 모습

밀실에서는 개간된 농지가 많이 있고 계속 개간을 해 나가고 있어 포도 농사와 함께 밭농사도 많이 하였다.

이 사람은 가을이 되면 김포공항 가는 쪽, 십정동에 있는 나병환자촌에 가서 닭똥을 몇 트럭씩 사서 밭 가까운데 부려 놓곤 하였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지게에다 바소쿠리를 차려서 닭똥을 짊어지고 경사진 산 언덕을 넘어 포도밭까지 운반을 하였다.

그러면 온 몸이 닭똥 냄새와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일을 해야 했고, 봄이 되면 포도나무의 순을 치는 등, 밭손질도 하였다.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포도나무’라 했는데, 포도나무가 뱀이나 구렁이같이 구불구불하게 생긴 것이 예수를 간접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가 말은 바로 했구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언젠가 비가 많이 와서 마을 방천(防川)이 무너져서 수해가 난 후에 이 사람이 혼자서 며칠을 걸려 큰 돌을 운반해서 그 둑을 다시 튼튼히 쌓아서 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도로보수도 하였다.

땅의 소유권 자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희생적으로 일을 하였으므로 하루는 관할 행정공무원이 이 사람을 찾아와 인적사항을 묻길래 왜 그러시냐고 하니 표창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표창은 무슨 표창이냐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하여 극구 만류하여 인적 사항을 가르쳐 주지 않고 돌려 보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심한 중노동을 헌신적으로 하는고로 이 사람이 지나가면 그 동네나 이웃 동네에 놀고 있는 아이들이 “저기 꽃집의 머슴아저씨 간다”고 소리지르기도 하였다.

해와 주님이 계신 집은 꽃이 많이 있는 고로 ‘꽃집’이라고 불리웠으며 이 사람은 그 집의 머슴으로 소문이 났던 것이다.

새벽이나 저녁이나 일을 하였는데 기분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해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일정하게 규모있게 일을 하였다.

아카시아 나무는 하루에 두 짐씩 하게 되어 있는 고로 오만제단 꼭대기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대부분 이 사람 손으로 져 날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가시가 날카로와 손을 찌르고 피부를 긁히는데, 먼저 와서 단련된 고참 형제들을 따라 가려니 상처가 더 많이 나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걸음을 겨우 떼어 놓을 정도로 무겁게 짊어지고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눈이 온 겨울에는 미끄러져서 다치기도 했고, 겨울이 아닌 때도 나무 뿌리에 걸려 지게를 짊어진 채 나무짐과 같이 거꾸로 몇 바퀴 굴러 떨어져 온 몸에 가시에 찔리기도 하였다.

숙소에 와서 옷을 벗어 보면 등에도 가시가 박혀 있는 그런 상태에서도 ‘너 같은 새끼는 마귀니까 죽어야 돼’ 하며 고소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 상처가 나고 가시가 박혀 있는 상태에서도 약 한 번 쓰지 않고 지내어도 곪아서 덧나는 일이 없고 상처가 빨리 치유되는 체험을 수없이 하면서 지냈다.

한 번은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데 젊은 청년이 하는 말이 “우리는 힘이 약하지만 조사장님은 힘이 장사시니 이 돌을 한 번 짊어져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40대 후반 장년에게는 불가능할 정도의 무거운 큰 돌인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막내로서 고참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의미에서 그 바위를 짊어지고 겨우 일어나니 다리가 벌벌 떨 리는 오금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한발 한발 옮겨서 가니 중간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고로 “너는 쉴 수가 없어! 너는 이런 고통을 당해야 돼’ 하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목적지까지 운반해 가며 나를 짓이겼던 것이다.

해와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별호를 ‘일군’이라고도 하시고,’12지파 두목’이라고도 하셨다. 다른 형제들은 ‘4’ 숫자지만 조사장만은 ‘5’숫자라고도 하시고, “조사장만 이루어지면 너희들은 맡아 놓고 구원이야!” 하는 말씀도 하시고, ‘막내둥이’라고도 하시었다. 그러나 밀실 식구들은 다 이 사람을 ‘막내둥이’로 알았고, 또 막내 둥이 취급을 하였다.

20대 새파란 젊은 청년이 이것을 하라 하면 이 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 하면 저것을 하고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잘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귀퉁이를 갈기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라는 것이 마귀인 고로, 그리고 ‘나’라는 것이 어느 정도 죽은 고로 매를 맞아도 고소하게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을 했던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을 진심으로 하나님같이 여기게 되니 자유율법이 지켜지며 마귀가 죽는 고로 때린 청년이 나중에는 이 사람을 찾아와서 “제가 손위 어른을 손찌검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잘못을 빌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 막내둥이였던 고로 뜨거운 여름, 섭씨 30도가 오르 내리는 날에도 해와 주님께서 쓰실 목욕물을 자전거 뒤에 가득 싣고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을 무릅쓰고 길어 오는 일을 맡아 하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급경사진 비탈길을 밀고 올라오느라 전신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도 누구 하나 도와 주는 자 없었다.

또한 수확기가 되면 포도를 따다가 손수레에 가득 싣고 부천 청과물 시장에 내다 팔고, 다시 밀실 식구들이 먹을 수박이며 과일 등을 상자에 담아 손수레에 가득 싣고 혼자서 비탈진 길을 끌고 와야 했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가게 되어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창피하게 생각되는지 뒤에서 밀다가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자신이 치가 떨리게 미운 마음’으로 연단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손수레를 끌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이긴자가 된 후 역곡의 단에 서면서도 83년까지 부천 청과물 시장에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팔고 사는 것과 운반은 이 사람이 맡아놓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리제단의 단상에 서게 된 후에는 승리제단 식구가 혹시 보면 실망할까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변장을 하여 새벽 일찍 청과물 시장에 나가곤 하였다.

그래도 역곡 교인인 충열군에게는 몇 차례 들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연단

이렇게 ‘나’라는 것을 짓이기는 생활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수십 년을 해 왔다. 밀실 안에서도 무서운 중노동을 하면서 피투성이 싸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

이 사람은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고 말하고는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지만 해와 주님은 밀실 식구들이 심한 중노동을 한다 하시며 자주 닭고기를 사오셨다.

이 사람도 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으나 마귀가 좋아하는 것을 먹어서 마귀의 기를 살려 줄 수 없는 고로 ‘고기를 못 먹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김치만 먹었다.

그런데 일차 이긴자가 된 후에 이 사람이 고기를 먹으니 ‘조사장님이 이제 고기를 잡수십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저도 이제 배웠습니다’ 하며 고기를 잘 먹으니 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밥을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즉시 식사 하던 것을 중단해 버렸다. 또 잠을 자는 시간이 되어서 졸리면 잠을 자지 않고 찬물로 목욕을 하는 등 잠을 깬 후에, 잠이 안 올 때 잠을 잤던 것이라.

또 이 사람은 생일 같은 것은 지내보지 않았다. 생일이 되면 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끊이시는 고로 일부러 생일이 되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라는 것이 육천년동안 하나님을 울리고 괴롭힌 원수 마귀인 것을 아는 고로 ‘나’라면 저절로 미워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반대 행동을 평생토록 해 왔지만 밀실 안에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철저히 비밀리에 실천했던 것이다. 해와 주님께서 무서움을 없애는 연단을 시키시는데, 처음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밤중에 공동묘지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라고 하셔서 공동묘지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곤 하였다.

그런데 해와 주님께서는 사람을 미리 공동묘지 근처 숲속에 보내 놓고 밤중에 이 사람 이 거기에 가서 기도하는 중에 모래를 던지게 하여 겁을 주려 하였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무서움이 없을 뿐 아니라 일생을 통해 수천 번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 두려움이 없어진 고로 무난히 이겨 나가니 나중에는 장사(葬事)지낸 지 3일 된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뜯어 시신을 들어내고 그 관 안에서 잠을 자고 오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밤중에 혼자 삽을 가지고 가서 무덤을 파고 관을 뜯어보니 목을 매어 자살한 시신이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신은 눈을 크게 뜨고 혀를 길게 뽑아 늘어뜨리고 있는, 보기에도 흉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 두려움 없이 시신을 들어내고 그 관에 누워서 잠을 청하여 단잠을 쿨쿨 잤다.

한참을 자다가 하나님께서 깨워주시는 고로 일어나 원상태로 무덤을 정리해 놓고 오니, 그 이후에는 무서움에 대한 연단을 안 시키시는 것이었다.

순종하는 면에 대한 연단도 단계가 있는데, 처음에 남의 집 가마니를 도둑질해 오라고 하기에, 밤중에 몰래 남의 집 담을 넘어 가마니를 도둑질 해 오니 해와 이긴자는 “이 도둑놈의 새끼야! 누가 가마니를 도둑질 해오라고 했어! 도로 제 자리에 갖다 놔!” 하며 호통을 치셨다.

훔쳐 올 때는 갖다 놓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훔쳐 왔기 때문에, 다시 들키지 않게 갖다 놓는 것은 더욱 힘들었던 것이다.

웬만한 사람 이라면 “은혜자라는 사람이 왜 도둑질을 시킬까?” 하는 마음이 들텐데 이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날이 맑게 갠 쾌청한 일기 인데도 해와 주님께서 “밖에 비가 오지?” 하면 “예” 하는 마음자세로 돌아가야지 “아닙니다. 날씨가 맑습니다. ” 하면 ‘이유 변명죄’ 가 되었던 것이다.

한번은 해와 주님께서 “조사장, 전기세 줄 돈 20만원을 왜 도둑질 해 갔어? 당장 가져 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밀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10원짜리 동전까지 다 털어 놓았으며 내 것이라고는 털끝 만치도 없었고, 이 몸과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이유변명죄가 되고, 이 결백을 알아주지 않고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죄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형제가 오해하면 몰라도 이 사람을 영적으로 키우고, 이 사람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해와 주님께서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면 섭섭한음란죄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입고 있는 의복도, 몸과 마음과 생명 모두가 다 「당신 것」을 「내 것」으로 알고 지금까지 사용하여 왔으니 도둑놈이 맞습니다.

이 시험을 이길 것을 아시고 시험을 주셔서 이기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는 마음을 품으니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씀이 이겼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쳐 나올 때 딴 형제들은 조사장이 점잖은 줄 알았더니 도둑질을 하였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또한 생각만 하면 자유율법에 걸리는 고로 생각의 자유가 없었다. 생각을 꽁꽁 묶어 놓고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누가 이야기를 걸어오면 마음 속으로 하나님 이 형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데 대답을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허락을 받고 나서 움직였다. 그렇게 하니 행동과 말이 자연 조심이 되며 남보기에 머뭇거리는 것같이 보이고 바보같이 보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길은 바보가 되어야 가는 길인 것이다.

마치 굼벵이가 매미되는 과정과 같은 것인데, 굼벵이는 꼬투리 속에서 한동안 꼼짝않고 죽은 상태로 있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꼬투리 속에서 나와 날개가 달리고, 이슬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쓴 상태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과정도 이와 같다.

‘나’라는 것이 마귀이므로 나의 몸을 묶어놓고 죽이라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 나라는 주체의식을 꽁꽁 묶어 완전히 바보가 된 상태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가사(假死)상태와 같이 죽은 상태에서 일정기간이 흘러가야 그 후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멋대로 살게 되면, 나라는 의식이 마귀이므로 변화가 오지 않는 것이다. 감정 자체가 죄인 것이다.

그래서 영모님도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무와 같이 감정이 없어지기 위해서 ‘나’라는 것이 노력을 해서는 절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마귀를 죽여 주시고 자유 율법을 대신 지켜 주시는 것이다.

기도를 하라는 해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밤새도록 기도를 하였는데도 그 다음 날 왜 기도를 하나도 안 했느냐고 야단을 치시며 지적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 이 사람이 밤잠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하고 말씀드리게 되면 이유변명죄가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인지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무조건 기도를 안 했다고만 하시니 누가 이 길을 가겠는가? 이와 같이 아무리 애를 쓰고 기를 써도 되어지지 않는 고로 내가 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이 길을 갈 수 없으니, 나는 포기를 해 버리고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하였던 것이다.

그제야 바라보이시는 영모님께서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하시는 듯 싱글벙글 웃으시는 것이었다.

그 때 ‘나’라는 것이 기도를 해도 죄가 되고, ‘나’라는 것이 하나님께 맡겨도 죄가 되고, ‘나’라 는 것이 하나님을 믿어도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자유율법을 지켜나가니 그 때부터는 미끄럼타듯이 쉽게 되어졌다.

‘나’라는 것이 하나님께 전체를 맡기면 마귀가 맡겼다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으시고 또한 죄가 되므로, 하나님이 오셔서 맡겨주시고 맡긴 것을 또 맡겨 주시고, 이 맡긴 것을 또 맡겨 달라는 마음상태를 가져야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나 용어는 여기와서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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