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군사혁명 이후 육군장교로서 그리고 전도사로서의 행적

군 영창에도 가고 재판도 받아

논산 훈련소에서 독도법 교관으로 있을 때 하루에 300명씩 이사람 앞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일찍 끝내고 박태선장로와 전도관에 대한 진리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훈련받는 사람중에는 신학교 졸업생, 재학생 및 목사, 전도사였던 자가 있어 군종참모에게 연락이 되고 또 그 위의 높은 사람에게 이 사실이 보고되어 이 사람이 불려 가서 구두발로 정강이를 차이고 호된 따귀를 맞으며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신병교육중에 전도관 진리를 전도하니 군 영창에 집어넣고 재판까지 받게 하였다.

당시 낮에는 신병을 훈련시키며 전도하고 밤이면 마을 청년들을 모아 중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면서 전도관을 개척하였다. 때로는 장교복을 입은 채 북을 치며 전도를 하니, 군 장교의 체면과 위신을 손상시키고 특정 종교를 전도한다하여 영창에 가두고 재판을 받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이 사람은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지휘 각서 0조 0항의 ‘모든 지도자 위치에 있는 군경(軍警)들은 주민들을 계몽, 교화하라’는 명령에 의하여 청년들을 교육시키고 교화한 것이 무슨 죄가 됩니까?”라고 스스로 변호하니 훈련소장이었던 백소장은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을 무죄 판결하여 석방시켰다.

그때 이 사람을 구타하고 영창에 집어넣었던 기성교회 장로들인 중, 대령과 백소장은 혹시 이 일로 자기들의 신분이 위태로와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이 사람에게 선물도 보내고 음식도 대접하려고 하였으나 이 사람은 같은 군인으로서 개인적인 앙갚음으로 선배 장교님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짓은 절대 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가는 곳곳마다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개척

이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 학교를 세우고 전도관을 세우고 틈만 있으면 전도를 하여 서울 시내에 안들어 간 집이 없을 정도였다. 논산에서도 낮에는 군영생활에서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퇴근하여 밤늦게까지 민간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계속해 나가니까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잠을 제대로 못자므로 피곤이 겹쳐 어느 날은 늦잠을 자고 급히 서둘러서 출근하는 바람에 이부자리를 살펴보지 않고 나갔는데 전 날 밤 코피를 쏟아 베개가 온통 피범벅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이 5시가 되어 군무를 마치고 퇴근하여 10리 길을 구보로 뛰어 재건학교에 도착하니 전학생 2∼300명이 이 사람을 부등켜 안고 통곡을 하며 울먹였다.

이 사람이 “왜들 이러느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고 의아해서 물어보니 코피로 물들은 이 사람의 베개를 들고 와서 부등켜 안고 다시 우는 것이었다.

당시의 학생들 중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공부를 못한 학생도 있지만 전란으로 어려워져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불우한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부모도 가르치지 못한 배움의 길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가르치시는 선생님, 낮에는 군무에 시달리시고 밤에는 피곤하신 몸을 이끌고와 가르치시는 선생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떠한 여건에서도 매일 군인선생님의 모든 개인 사정을 송두리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수고를 하시는 선생님, 너무도 힘드시어 코피를 흘리시면서도 저희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또 다시 강단에 서 주시는 선생님을 뵈올 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며 또한 선생님의 건강 사정이 너무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눈물이 흐른다고 하면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이 엉엉 소리내어 통곡바다를 이루는 것이었다.

상수중학교: 현 조양중학교

이런 위대한 선생님을 모신 것이 진정 가슴뿌듯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설사 우리를 죽음의 길로 끌고 간다 해도 선생님께서 가자시면 기꺼이 가겠다며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후 300명의 학생들이 배움에 더욱 열성적이고 적극적이 되었으며, 흙벽돌을 찍어 학교와 전도관 제단을 건축하는데 헌신적으로 협조하였다.

이후 금마일대에 전도의 불길이 일기 시작하여 제단이 크게 발전되었던 것이다. 당시 기성교회 황박사라는 목사가 부흥집회를 한다기에, 이 사람도 참석하였는데, 설교 시간중에 자신만만한 어조로 성경에 대하여 질문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사람이 죽는 것은 죄값으로 죽게 되었다고 성경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죄가 우리 인체 어디에 존재하고 있습니까?”고 질문을 하였더니 당당하게 단상에서 외치던 목사가 많은 기성교인들 앞에서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얼버무리는 고로 “죄는 피속에 있습니다”하고 가르쳐 주니 그는 부흥집회에 모인 교인들에게 망신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 외에 두세 가지 질문을 더 하였는데, 결국 이 질문 바람에 부흥이 아니라 해산이 되어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났으며 전도관으로 많은 교인들이 돌아오게 되었다.

재건중고등학교 개교기념식, 1962년 8월 6일

이 사람이 논산 훈련소에 근무했을 때 세운 학교가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면 동고도리의 금마재건 중고등학교였는데, 지금은 공립 익산 중고등학교로 발전하여 현재도 수많은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파주의 마지 감리교회, 양주군 남면 상수장로교회, 상수 중학교, 또한 임진강 옆 백학장로교회, 동두천 안흥리의 농축기술 중고등학교(현재는 신흥 실업 중고등학교로 변모), 경기도 파주군 일동면에 일동중학교 등을 세웠다.

전남 광주에서는 OBC교육 갔을 때 당시 기성교회에 다녔던 장창익집사와 힘을 합쳐 상명여자고등학교를 세웠으며, 이 외에 전도관도 곳곳에 세웠던 것이다(개봉동제단, 도봉동제단, 금마제단, 수궁동제단 등등).

 

신비로운 초능력을 행하다

이 사람이 온양제단에 있었을 때 일주일간 부흥집회기간을 정하고 부흥회를 했는데 계속 비가 와서 집회에 지장이 많으므로, 단상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감람나무 가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한 후 비가 멈추었으니 밖에 나가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쏟아졌던 비 때문에 계속 창문을 타고 빗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장로들이 비웃으며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단상에서 내려와서 밖으로 나가 온양만 비가 오지 않고 둔포,성환, 천안, 예산등 주위를 돌아가면서는 비가 오고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제서야 교인들이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또 향취가 진동하고 이슬 같은 은혜가 쏟아지니 온양의 지방유지들이 많이 전도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음란죄를 짓고 오는 사람에게는 뱀냄새가 나고 도둑질을 하고 오는 사람 몸에서는 구린내가 나는 것을 맡을 수 있었다.

이효성이란 청년교인이 음란죄를 지었어! 하고 지적을 하니 그 청년이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하며 얼굴이 빨개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타일러 주었는데 쑥스러워서인지 그 후 제단에 나오지 않았다.

또 다른 청년에게서 구린내가 나므로 “너, 왜 도둑질을 했어?”하니 “안했어요” 하므로 “잔소리 하지 말고, 어디 숨겨 놨어?” 하며 호통을 치니 “저기 숨겨놨어요.” 하며 바른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 하면서 무서워서 제단 출석을 하지 않는 고로, 다음부터는 지적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바라 보이는 하나님께서 지적을 하지 말라고 하시므로 그 후부터는 냄새가 나도 일체 지적을 할 수가 없었으며 알면서도 모르는 것같이 지내 오기를 수십 년간 해왔다. 이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그런 능력이 있었다.

이 사람이 제주도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있었을 때 훈련병 중에서 돈을 잃어버린 자가 있어 중대원 전원이 단체기합을 장시간 받게 되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어도 범인이 나타나지 않아 모두들 고통이 심하므로 이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가서

“중대장님, 제가 도둑을 잡을테니 기합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네가 봤어?”

“안 봤습니다. 그러나 300명 훈련병 전원을 제 앞으로 1m 간격으로 한 명씩 제 눈을 바라 보고 지나가도록 해 주시면 제가 잡아 내겠습니다. ” 하니 중대장이

“너, 못잡으면 죽어” 하며 그렇게 하라 하였다.

그래서 내 앞으로 150명쯤 지나가는데 구린내가 나는 자가 있어

“중대장님, 바로 이 놈입니다” 하니 그 훈련병이 이 사람 멱살을 잡고 아니라고 우기며

“이 자식이 괜히 생사람 잡는다” 고 펄펄 뛰며 날뛰는 고로 냄새난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내가 봤어!”하였다.

그러자 중대장이 사람을 시켜 도둑질한 훈련병의 자리 밑에서 돈을 찾아냈다. 그 사건 이후 이 사람은 훈련병들 사이에서 귀신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벌써 20대에 냄새로 음란죄인, 도둑질한 죄인들을 구별해 내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온양전도관에서 시무했을 때 제단에 있지 않고, 제단과 좀 떨어진 마을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매일 새벽 제단에 가는데 하루는 지름길을 철조망으로 막아 놓아 돌아서 가다가 늦게 도착하여 단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자 좋지 않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갔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 철조망친 집의 12살짜리 외아들이 멱감다가 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 이 죽은 아이의 부친은 평소 전도관이라면 괜히 싫어하고 못마땅 하게 여기다가 급기야는 그 길이 자기 농토 안에 있는 땅이라는 핑계로 길을 막았던 것이다.

그 집안의 기막힌 사정과 애곡소리를 듣고 이 사람이 찾아가서 “그 아이를 제가 책임지고 살려 줄 테니 그 아이 시체를 달라”고 하니 더욱 펄펄 뛰며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기어이 거절하는 고로 돌아오고 말았다.

뒤에 들으니 동네 유명한 무당을 불러와서 자리걷이 (푸닥거리)를 하니 그 무당말 “이 아이는 전도관 전도사를 미워하고 길을 막았기 때문에 죽었으니 가서 용서를 구하면 아이가 살 수도 있다”고 하였으나 그 때는 죽은 지 사흘이 지나 시체가 이미 썩어가는 상태인지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남을 비방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단상에서 말씀을 하게 되면 말씀이 씨가 되어 그대로 이루어지므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 말에도 ‘여자의 악담에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빌어먹을 자식’이니 ‘망할 자식’ 등의 욕을 하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고쳐야 할 말버룻이다.

‘아이구, 힘들어 죽겠네’ , ‘좋아 죽겠네’, ‘더워 죽겠네’, ‘추워 죽겠네’ 등등 ‘죽겠네’로 끝을 맺는 우리들 말이 씨가 되어 모든 인류가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고쳐서 해야 되는데 말끝마다 ‘영생하겠네’ 또는 ‘살겠네’로 고치든지 ‘죽겠네’ 소리를 안 하든지 해야 되는 것이다.

 

 단에 서지 말라는 영모님의 명령에 순종하다

조희성 중위

온양제단에서 시무하는 동안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비를 멈추고 냄새로 죄를 지적하는 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역사를 하게 되니 하루는 영모님께서 부르셔서

“단에 서지 마라 ! 단에 서면 이긴자가 될 수 없어! 조중위는 내가 장차 세계에서 제일 큰 단에 세울거야!” 하심으로

“네, 알았습니다” 하고 온양으로 돌아가서 단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전 교인이 들고 일어나서 장로를 중심으로 곳곳으로 다니며 조전도사가 온양제단을 떠나면 온양제단은 문을 닫는다고 이야기하였다.

결국에는 영모님 앞에까지 가서 조전도사를 떠나 보내면 온양제단은 문을 닫게 되니 조전전사를 온양제단에 그냥 있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하게 되니 영모님께서도 마지 못해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영모님의 눈치가 다르고 또한 하나님의 숨은 사정을 아는 고로 이 사람은 얼마간 시무하다가 기회를 봐서 몰래 온양제단을 떠나오는데 어떻게 알고 역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아쉬운 석별의 전송을 해 주었다.

그 와중에 한 학생이 달리는 열차에 몸을 날려 자살한 일이 발생 하였다. 이런 일은 일동중학교를 떠날 때도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못한 공부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없는 세상은 살기 싫다면서 죽음을 택한 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일체 드러내지 않고 평신도로서 지내게 되었다.

언젠가 조성옥 전도사가 논산 연무대 제단에 있었을 때인데 전도가 안된다 하여 이 사람에게 대신 단에 서 달라고 하므로 이 사람이 몇 번 단에 서게 되니 은혜창파가 되고 부흥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성옥 전도사가 하나님의 깊은 사정도 모르고 영모님께 가서 “조중위 전도사를 다른 사람들은 마귀라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마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단에 서게 허락해 주십시오” 한 바 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한번은 몇몇 전도사들이 영모님께 “조중위를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여쭌 적이 있었는데 영모님은 “너희들, 조중위 만큼만 믿어!” 그리고 “이 소리 조중위한테 가서 하지마.” 하신 바 있다고 그 소리를 조성옥 전도사가 이 사람한테 와서 전해 준 일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소사 신앙촌 강대헌 장로댁 앞에서도 영모님께서 이 사람에게 “장차 세계에서 제일 큰 단에 세워 줄거야! 그 때까지 드러나지 마라! 숨어야 돼” 하며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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