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승리제단의 교리는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하나 뿐입니다. 이 유일한 교리의 원리를 세가지 신앙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기성종교와 다른 점과 비젼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신앙적 근거

첫째, 신앙의 근거;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식이며 따라서 하나님인데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사람이라는 자아인식입니다.

이것은 종교 경전과 과학적인 유전의 법칙과 이치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다” “사람 속에 불성이 있다” 종교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그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리워져 있는 말씀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란 기독교의 하나님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것은 죄의 유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의 포로가된 그 싯점에서의 상태가 바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이며 그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는 모두 한 조상을 공유하는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원래 인류는 한 몸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몸처럼 여기는 마음”,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여기는 마음” 은 억지가 아니라 순리입니다.

신앙의 대상

둘째, 신앙의 대상; 죄의 정체가 현재 각자의 ‘나’ 를 주장하는 의식(주체의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 버리고 잠재의식 속의 ‘하나님의 영’ 이 부활하여 주체의식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승리제단은 하나님의 영이 주체의식이 되어 하나님이 나를 100% 주장하는 경지의 완성을 신앙합니다.  따라서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불교의 부처님에 해당합니다.

승리제단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각자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생명(양심)의 영을 말합니다. 즉,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창조주 개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다는 말씀의 뜻도 기성종교적 해석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것은 열등한 존재(피조물)이 초월적 존재(창조주)를 섬기는 의존적 기복적 개념이 아니라, 죄의 포로상태에서 석방되려는 하나님 입장에서의 투쟁을 뜻합니다.

신앙의 방법

셋째, 신앙의 방법; 현재의 주체의식인 ‘죄의 영’ 을 없애 버리려면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오랜 습관을 끊고 역으로 행하는 반대생활을 해야합니다. 반대생활이란 현재 이 순간 1초 1초 사이에 죄의 영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영을 강화시키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강해지면 그 마음이 영생의 소망과 확신으로 차 오릅니다. 희망과 소망은 종교적 신앙을 떠나서도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사라질 때 병마가 찾아옵니다. 반대로 어마 어마하게 큰 희망을 품으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고 매사가 점점 만족스럽고 감사가 끊이질 않으며 생활의 활력이 솟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복과 영생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강해지는 방법론을 알고 따라야 합니다. 죄악이 득세하는 현실세계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순간 순간에 그 마음이 죄의 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코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억천만번 넘어지고 실패를 거듭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난관을 헤쳐나가 기어코 이길 수 있었던 마음의 무기가 바로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기는 사상” 이었습니다.

이 마음가짐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입에 밴 소리가 결코 아니고, 구세주 후보자께서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의 전쟁을 갖은 수단으로 정진한 끝에 찾아 낸 피와 땀과 눈물과 인내로 일구어진 열매이며 승리가 검증된 방법론입니다.

기독교와는 교리의 형성 주체가 다르다

승리제단 교리가 기독교와 다른 점은 첫째, 교리체계의 형성 주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예수 후대의 정치권력과 교회의 이해관계에 의해 인위적으로 제작되어 수없이 변화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반면, 승리제단의 교리는 이긴자구세주의 직설적이며 구체적인 말씀 그 자체입니다.

예수를 신격화시킨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은 예수출생후 약 400년이 지나서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각각 열린 종교회의에서 다수결 합의로 도출한 교회의 약속입니다. 그 회의들은 순수한 종교회의도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로마제국을 유지하는데 종교를 이용하려했던 로마황제가 의장 자리에 앉아 로마황제의 힘으로 종교 교리를 일정한 방향으로 교통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구약성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대경전에 구세주 출현이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을 저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합의를 거쳐 예수를 구세주로 증거하는 신약성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는 예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교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승리제단 교리는 전적으로 이긴자구세주의 말씀입니다. 종교론, 신론, 죄론, 인간론, 선악과론, 천국과 지옥론, 구세주론, 구원론, 부활론, 말세론, 순교론, 신앙론 등등 모두 이긴자구세주의 명확한 말씀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명확한 말씀은 해석이 불필요하며 변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와는 설교의 주체가 다르다

둘째, 교리를 설교하는 주체가 다릅니다. 기독교는 신부와 목사가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하는 반면, 승리제단은 이긴자구세주 이외에는 예배를 주관하거나 설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신과 신도 사이를 잇는 중계자를 세우는 체계입니다. 하나님과 신도 사이를 잇는 예수의 존재가 그렇고, 예수가 안계시니까 예수와 신도 사이를 잇는 목사와 신부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즉 신과 신도들 사이에서 신의 권위를 부여받은 목사나 신부가 설교를합니다.

이에반해 승리제단은 이긴자구세주로부터 직접 배우는 체계이기 때문에 중계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긴자구세주는 하루에 수차례씩 예배를 친히 인도하셨고 이런 일을 매일 반복하셨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긴자구세주가 안계시면 녹화한 예배 테이프를 통하여 구세주님으로 부터 직접 배우는 것입니다.

기독교와는 교리 실천의 주체가 다르다

셋째, 교리를 실천하는 주체가 다릅니다. 기독교 교리의 실천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반면에 승리제단 교리의 실천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최고 실천 사항이라면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이 일반적인 대화에서 보듯 교리 실천의 주체가 ‘나’ 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예수를 믿어서 내가 구원을 받고 내가 천당도 가고 내가 영생을 한다는 교의입니다.

이에반해 승리제단 교리는 특정인을 믿는 것이 아니고 죄가 되는  ‘나’ 를 없애려는 목표이기 때문에 교리 실천의 주체도 ‘나’ 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처음에는 0.0001%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실천하다가 1%, 2%, 3% 차츰 성장하여 결국 100%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실천하는 경지에 이르는 순리적 과정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이 교리는 실천하는 주체가 100% 하나님일 때에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여겨지는” 나를 초월한 해탈자의 철학이자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일한 교리는 죄의 탈을 벗으려고 시작하는 교리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정진하는 교리이면서,  죄를 영원무궁토록 이기는 교리로써, 각자의 경지가 다를지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변치 않는 완전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비젼

누구든지 하나님처럼 여기는 사회가 바로 지상천국입니다. 따라서 이 교리가 억압의 터널을 빠져나와 세상에 널리 빛을 발할 때에는 이 땅에 하늘나라가 기어코 건설되고 말 것입니다.